20231005_도시 지표에 대하여
20여년전 베니스 비엔날레를 갔을 때 전시장에 전시된 근사한 지도를 본 적이 있다.베를린의 도시현황을 figure & ground 기법으로 그려 큰 패널에 전시했는데, 도시의 역사적 흐름과 현황 도시의 발전 구상을 지도로 표현하고 있었다.그 후 난 지도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돼 사무실의 내 방 회의 테이블 유리 밑에 베니스의 지도를 깔아놓고 지금도 가끔 유심히 베니스 지도를 바라보곤 한다. (이건 누군가의 연구실 테이블을 보고 따라한 것임…ㅎ)세종시의 건축문화제 준비단계에서 우리 세종시를보여주는 근사한 지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친환경 도시를 만들기 위한 지표를 지도로 표현해 보고자 도시 지표라는 꼭지를 만들었는데, 사실은 약간 실패…아무도 제대로 호응을 해 주지 않았고, 나 혼자 정리하기는 다소 역부족이었었다.대신 세종시 건축기본계획에 수록되어 있는 지도들을 전시하기로 하고, 그걸 배너에 실어 지금 세종특별자치시청 홀에 전시 중이다.도시는 도시간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지도를 보고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해 봤으면 한다.코펜하겐이든 말뫼든 암스테르담이든, 서로 선의의 경쟁으로 좋은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10월5일부터 10월10일까지 6일간 세종건축문화제가 세종특별자치시청에서 있습니다.“세종 자연과 건축을 잇다.” 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금년 세종건축문화제를 통해 친환경도시 세종이 보다 더 시민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라는 책에서 세네갈의 생태환경운동가인 코샤 쥬베르트는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한 두가지 주요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 다른 분야와의 긴밀한 협력’이다.서구문명에서 시작한 근대산업사회는 그 문명을 일궈온 서유럽과, 북미 아메리카 대륙, 동북아시아 등에 문명의 이기를 가져다 주긴 했으나,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아프리카 대륙과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대륙에는 기후 위기에 의한 극심한 고통만을 안겨주었다.아프리카 대륙에서 눈물겨운 생태운동을 하는 코샤 쥬베르트와 같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생태위기의 원인을 초래한 사람들, 즉 서구문명의 이기를 누려온 사람들이 어떠해야 하는가는 자명한 듯 보인다. 지구공동체에 위해를 가해온 가해자로서의 반성, 그리고 문명에서 한발 떨어져 자멸을 초래하게끔 하는 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를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교육하고,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2023년 세종건축문화제 준비를 시작할 즈음, 친환경 도시를 주제로 문화제를 진행해 보자 애기하니, 크고 작은 이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너무 진부한 주제가 아닌가. 친환경 친환경 했지만 실재 바뀐게 무엇이 있는가? 건축 도시를 하는 사람들이 친환경 이야기 해서 무엇하나. 디자인적이고, 더 생산적인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것 아닌가?그리고 문화제 준비를 하며, 세종시의 친환경 건축 도시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을 때, 여러 전문가들이 도움과 조언을 주긴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자기의 분야에서 더 접근하기 힘든 일, 돈이 되지 않는 일 등 핑계 아닌 핑계로 현실적인 도움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친환경 도시의 주제에 호응을 해 준 것은 학생들과 뜻을 같이 했던 건축사분들이었다. ‘세종 자연과 건축을 잇다.’라는 추상적 주제 속에 세종시를 친환경도시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묻자, 중고등학생들은 건축이 환경과 어우러지기 위한 자신들의 생각을 대통령 집무실 건축계획을 통해 보여주었다. 또, 친환경도시를 주제로 한 대학생 공모전에서는 친환경 도시가 되기 위한 건축적 장치들을 계획하여 많은 학생들이 설계안을 제출해 주었다.행정중심복합도시 기획단계인 20여년 전부터 친환경도시라는 주제는 세종시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세종시가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어지고 있는 신도시들이 친환경도시가 되고 있는가 물으면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순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반대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친환경도시를 주제로 오랜 기간 문화제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경제성이나 문화제 흥행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8개월여간 매주 문화제 TF팀 회의를 진행하며, TF팀 위원 상호간 이야기한 것은, 문화제를 너무 흥행위주로 바라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10여명이 아닌 4-5명이 와서 보더라도 세종시가 친환경도시가 되기 위해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해야 한다는 것이 TF팀의 의지였다. 그럼에도 청소년 여름건축학교는 예년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해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 주었고, 대학생공모전 역시 전국에서 좋은 작품들을 제출해 주어, 보람되게 공모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이제 문화제가 5일 남았다. 흥행과 별개로 문화제 기간동안 세종시의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폐친 여러분도 한번 꼭 방문해서 문화제를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ㅡ.~~ 우리나라 최고의 친환경도시 전문가이신 아주대학교 이규인 교수님 발제의 도시건축포럼도 있고, 건축영화제도 있고, 초대작가전도 함께 있습니다. ^^
230819_스콧 니어링과 송성영
송성영 선생이 작고한 지 일년이 지났다.요즘 스콧 니어링의 책들에 빠져 몇 주간을 보냈는데, 스콧 니어링의 삶과 송성영 선생님의 삶이 닮아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 재미난 책을 한권 발견했다.바로 정운현 선생님이 쓴 <한번 뿐인 네 인생, 네 뜻대로 살아라!>라는 책이다. 12명의 일대기를 평전형식으로 쓴 책인데, 스콧 니어링의 삶과 더불어 송성영 선생님의 삶을 마지막 부분에 담았다. 길지 않은 글들 속에 내가 알고 있는 송성영 선생님 이야기를 책에 담아 고마웠고, 니어링의 삶을 함께 다루어 기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두 사람의 공통점은 시골에서 자급자족을 목표로 살아가며 생태적인 삶을 추구한데 있는데, 송성영 선생의 책이나 오마이 뉴스에 있는 송성영 선생의 기사는 일상을 다룬 글이 많고, 이론적으로 그려진 부분이 없기 때문에 소설 속 독백처럼 그의 생각을 읽게 된다.하지만 스콧 니어링은 사회학자 경제학자로서 이론서적을 여럿 집필하다보니 자신의 주장과 이야기를 일목 요연하게 전개해서 글이나 책을 썼다.부인 헬렌 니어링과 미국 동북부의 버몬트 주와 메인 주에서 함께 한 감동적인 삶 때문에 그와 헬렌의 책들을 찾아 읽었는데, 애니 <바다가 들린다.> 의 회상씬 처럼 다가오는 문장들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_1911년 그가 써놓은 좌우명_ 스콧 니어링 자서전 <이하 자서전> p38“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일을 하기 위해,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이다. “ <자서전> p42“나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마트 스완슨 같은 희생자들이라는 귀중한 교훈을 잊어본 적이 없다. “<자서전>p82 ; 니어링은 청년기에 주일학교 선생님까지 하며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어느 순간 기독교와 인연을 끊었다고 했다. 그이유는 기독교가 ‘이교도’를 냉대하고 사회적 정의의 편에 서지 않았고 부패의 온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두를 동의할 순 없지만 종교가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한다.“그 밖에도 나는 인간이 자연의 경제에서 담당해야 할 본분이 있으며 자연을 발전시키는 데 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 이는 인간이 최소한의 파괴를 대가로 치르면서 생산하고 창조하기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서구 문명이라는 프로그램이 전개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이기보다는 명백히 파괴적이었다. ” <자서전> p239“나는 독점자본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나는 평화주의자로서 폭력사용의 효능이나 정당성을 믿지 않는다.” <자서전> p471“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돈은 우리가 사도 되고 안 사도 되는 상품의 하나이며, 우리가 마음껏 탐닉할 수도 있고 절제할 수도 있는 사치품이다. 세상에는 돈보다 더 탐닉할 수 있는 많은 사치품들이 있다. 그것은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시골 생활, 마음이 끌리는 사람 같은 것이다. “ <조화로운 삶> p36“사람은 집짐승을 사고, 갖고, 되팔고, 부려먹고, 학대하고, 고문하며, 집짐승을 죽여 그 고기를 먹으면서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집짐승들이 자기들에게 봉사하도록 만든다. 집짐승이 저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늙으면 푸줏간이나 어떤 곳으로 끌고 가 바로 죽여 버린다.고양이와 개들은 사람의 밥상 밑에서 비굴하게 빌붙어 산다. 애완동물은 야생동물이 다가오면 죽이거나 쫓아낸다. 하지만 스스로 살아가며 자존심을 잃지 않은 야생동물의 생활이 접시에 놓인 음식을 주워 먹도록 길들여진 하인의 생활보다 훨씬 훌륭한 것 같다. ” <조화로운 삶> p43“오래된 시골집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시골집은 둘레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며 그 일부가 되는 것에 만족한다. “ <조화로운 삶> p72“돈을 쓴다는 것은 다시 그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스티븐슨이 <크리스마스 설교>에서 한 충고에 따라서 행동하려고 했다. 스티븐슨은 “적게 벌고, 그보다 더 적게 쓰라.”고 말한다….마크 트웨인의 말마따나 “문명이란 사실 불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끊임없이 늘려가는 것이다.”…노동력을 팔 때 생기는 착취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현명한 쥐가 덫을 조심하는 것처럼 시장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조화로운 삶> p174“삶은 우리 모두가 몸 바쳐서 벌여 나가는 사업과 같은 것이다.”…가장 조화로운 삶은 이론과 실천이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는 삶이다. “ <조화로운 삶> p 218“스콧은 자기 책이나 강연에서 ‘나’라는 말을 드물게 썼고, 보통 대화에서도 되도록 적게 쓰려고 애를 써서 나중에는 거의 쓰지 않게 되었으며 대화 전체에서 공동체 성격을 띄게 되었다.“ <아름다운 사람 사랑 그리고 마무리_헬렌 니어링> ; 이하 아름다운) p14“이 밖에 아이를 갖지 않은 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회에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여, 새로운 인구를 더하지 않음으로써 인구 증가의 압박을 늦추게 했을 수도 있다.“ <아름다운> _ 20세기중후반을 살았지만 인구 문제를 윤리의 문제로 본 선견지명.”스콧은 자기 힘이 아주 사라지기 전에 가고 싶어 했다. 그이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기를 원했고, 의식을 갖고 또 의도한 대로, 죽음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 협조하면서 죽음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 <아름다운> p232 “과일35%,야채50%(1/3은 녹색 채소, 1/3은 황색 채소, 1/3은 수분이 많은 채소), 단백질 10%, 지방5%. 물론 꼭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식습관을 가진다는 목표이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_이하 소박한 p45“인간과 유인원은 모두 과일 상식 동물류에 속한다. “ <소박한> p75송선생님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마음 속을 들여다 보면 니어링을 공감하는 면이 많았으리라 추측한다. 니어링을 잘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고…니어링의 자서전 제목은 그를 사회주의자라 하지 않고 근본주의자로 지칭하고 있다. 삶의 근본을 고민하고 바른 이론을 실천하고자 했으며 가식에 휩싸이지 않으려 했던 두 인물. 지금 니어링과 송 선생이 그리워질 만한 세상을 나는 살고 있다.
건축과 도시 _ 문화의 차원 ; 제6회 세종건축문화제 <청소년 여름건축학교>를 준비하며
건축과 도시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늘상 던지는 질문이 어떻게 아름다운 건축 아름다운 도시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요즘 사람들은 휴가철이든 연휴이든 해외로 여행을 나가 외국의 아름다운 건축물,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감탄했다고, 위안을 받고 왔다고 즐거운 여행담을 던지기 일수다.그러나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당장 아파트 값 떨어진 걸 걱정하고, 저 산을 대지로 만들어 개발하면 돈이 얼마나 되는 지를 고민하고, 옆 상가에 공실이 늘어나 이제 이 동네 부동산 가격이 내려앉을 것 같다고 부동산 걱정 돈 걱정에 여념이 없다.그런 대화 속에 있다보면, 과연 유럽의 아름다운 마을이나 우리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던 외국 어느마을들을 우리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던지게 되곤 한다.나는 그리이스의 마을들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시간이 날때마다 그리이스에 대한 유투브 채널을 찾아 시청하곤 한다.금융위기 이후 경제침체기에 많은 혼란과 도시파괴가 있었던 그리이스는 겉으로 보면 낙후된 도시와 덜 계몽된 민중들이 살아가는 후진국처럼 보인다. 아테네 곳곳에 낙서화(Graffiti)가 널부러져 있고, 난민들과 이주민들이 마약에 취해 도시를 활보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방치 돼 일부는 슬럼가로 전락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가는 바닷가나 산중에 있는 마을들을 보면, 더 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고대문명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그네들의 문화적 힘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동네 길을 아름다운 돌로 포장하고, 집 앞에 황토화분을 두어 나무와 꽃을 아름답게 가꾸고, 집 내부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다. 해마다 찾아오는 부활절에 집과 담장에 페인트를 칠하고, 옆집 사람을 초대해 마당에 놓인 꽃과 야외테이블과 집 인테리어를 자랑하며, 즐거이 한 때를 보낸다. 그리이스의 이런 시골에 장수마을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나름대로 그들의 마을에서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쿄토의 료칸을 가꾸던 일본인, 새벽에 자신의 상가 쇼윈도우를 열심히 정성스레 닦던 영국인, 주차장 창고를 집수리 도구로 가득채우고, 주말마다 집가꾸기를 하는 프로방스인 등도 아름다운 마을이나 도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다.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건축은 건축가나 도시계획가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문화의 힘이고,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이다.시민들이 아름다운 도시를 가꿔나가기를 포기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건축 아름다운 도시를 전문가가 계획한다 해도, 그 도시의 아름다움은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20여년전 대전에서 건축문화제를 준비할 때, 나는 건축문화제가 전문가의 토론회, 유명 건축가의 홍보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아직도 뛰어난 건축문화를 위해 전문적인 토론과 건축이해를 위한 전문가의 활동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요 근래는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그래서 금년 세종에서 열리는 <청소년 여름건축학교>에 대한 기대가 크다.꼭, 건축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건축은 전문가의 공부가 아니고, 교양으로서의 공부가 될 필요가 있다.많은 시민들이 건축을 이해하고 건축에 대한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다.그래서 내가 그리이스 시골마을에서 몇 해를 살아갈 것을 꿈꾸듯, 세종을 찾은 시민들이 세종에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공간 속에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P.S: 7월12일까지 제6회 세종건축문화제 <청소년 여름건축학교>접수를 받습니다. 7월22일 7월23일 양일간 대학생 튜터들과 건축사분과 함께 중고등학생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어 보는 행사입니다. 경복궁, 창덕궁, 연경당, 낙선재 등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고궁도 생각해 보고, 청와대, 백악관, 버킹검 궁등 나라의 통치자가 사는 공간에 대해서 학생들이 생각해 보고 건물을 만들어 보는 즐거운 프로젝트입니다.페친분들 중 건축에 관심이 있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게 권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내 마음은 아직 파릇한 새싹만 봐도 감동하던 대학시절 마음인 것 같은데,자꾸 나이 얘기를 하려 하는 나를 보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내가 좋아하는 김승태 협회장님으로부터 세종건축문화제 추진위원장을 맡아줬으면 하는 제안이 왔을 때 거부하지 못한 것도 결국 나이 때문이다.나이가 드니 회피하고 비켜갈 수 없는 일들이 자꾸 늘어만 간다.세종건축문화제는 10월5일에서 10월9일까지로 예정되어 있고 올해가 6회째이다. 올해 문화제는 친환경도시 세종으로서 현재를 평가하고 세계적 친환경도시를 만들기 위해 갖추어야할 사항들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많은 꼭지 중, 청소년 여름캠프, 대학공모전, 도시지표 작업이 진행 중인데, 행복도시 세종에 관여하고 계시는 많은 폐친분들의 관심과 협조가 필요합니다. 특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공모전에 많이 참여할 수 있게 대학 교수님들, 대학에 출강하시는 건축가 분들 잘 부탁드립니다. ~~ ^^다음은 공모전 주제문이고 포스터의 캘리는 캘리 작가이신 김순자 선생님이 써주셨습니다.자연 이라는 말은 서양의 말을 한문으로 번역한 nature의 의미부터 道法自然이라는 동양고전에서 유래한 의미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자연스러운, 자연과학, 자연경관 등 우리는 이 자연이란 단어를 여러 말로 변용하여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사용합니다. 건축과 관련되어서, 자연이라는 단어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발생적인 광의의 환경적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습니다.친환경건축, 생태건축, Passive 건축 등 자연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건축적 방법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 환경오염의 문제 등 오늘날 환경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행복도시 세종 역시 친환경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세계적 친환경도시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자연의 질서가 깨지고 오늘날의 환경위기가 도래한 이유는 자연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연속성이 흐트러졌기 때문입니다. 2023년 세종 건축문화제는 세종특별자치시의 건축이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건축이라는 인위적 수단을 통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하려 노력하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공모전 역시 “세종 자연과 건축을 잇다”라는 주제를 통해 친환경도시, 친환경 건축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자연환경과 공존하기 위해 계획된 모든 설계작품)가 담긴 작품이 제출되기를 기대합니다.
Barcelona Pavilion 2022_ Mies van der Rohe ; 추상화의 제 문제들
22년만에 다시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앞에 섰다. 22년전 여기 이 건축물을 직접 보기전까지, 나는 의아해 하고 있었다. 왜 현대건축사 책은 그토록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이 건축물을 이해시키려 하는가하고… 그런데 22년전 이 건축물 앞에 서자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바닥과 지붕을 연결하는 얇은 유리벽과 대리석벽 얇은 십자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구조물 앞에서 어떤 건물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처럼 공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바르셀로나 한 복판에 전시돼 공간이란건 이런거야. 하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과 같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한 이 건축물의 가치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온당치도 않다. 하지만 파빌리온이 지어진 1929년은 역동적인 해였고 그 시대에 미스가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1915년 말레비치는 그의 절대주의 회화 black square를 그렸다. 192-30년간 추상회화는 절정에 이른 듯 보였고 미스의 파빌리온은 그러한 예술사조와 함께하며 minimalism을 추구했다.아도르노는 근대성 내에 자리잡은 추상화 오브제화가 제노사이드같은 비극을 만들어냈다고 얘기한다. 수학적 합리성, 실체를 개념에 가두고 그것을 대상화하려는 시도들이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고 삶과 이론을 분리해 타자를 타도의 대상까지 만들어 내게 한다는 것이다.아도르노의 생각은 동양적 사유와 상당한 접점을 이룬다. 노자의 상대주의는 언어적 실체가 규정되어질 수 없다고 하고 주체와 타자가 분리될 때의 위태로움을 경고한다. 불가의 반야심경은 자아와 타자가 곧 하나였슴을 일깨운다. 추상화의 위태로움은 주체가 타자와 스스로를 경계짓고 있는 그대로인 삶과 주체의 시간이 분절될 때의 위태로움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추상적 사고를 부인하고 자기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추상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일 수 있는 것이다. 선종의 화두 역시 추상화를 경계하고 추상화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다시 언어와 불확정성 속에 자신을 가두는 꼴 아니었던가?추상성에 대응해 실체를 분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운동과 강도로 실체를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는 또 오랜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이에 대해선 여기까지 이야기하는게 좋겠다.
미스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전시물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긴 했으나 삶과 일체화된 공간으로 파빌리온을 만들지 못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파빌리온을 통해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미닐멀리즘의 추상성도 동양건축의 영향도 시대가 해결하고자 했던 기술적 문제도 고스란히 이 작지만 위대한 공간에 스며들어 있어서 그리고 20여년동안 그대로 잘 남아 있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220702 _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에 대하여
영화 <희생>을 다시 봤다.벌써 네번째인가…대학 다닐 때는 타르코프스키를 이해해 보겠다고 그의 책 <봉인된 시간>을 정독하기도 했었는데…드문드문 생각이 날 때나마 들여다 본 이 <영화>가 불연듯 다시 떠오르게 된 건 내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며 가진 여러 생각들과 그의 <영화> 속 생각이 어떻게 달랐나 되돌아보기 위해서였다.다시 보니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가졌던 나의 생각이 30여년간 다 제각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젊었을 때는 니체와 일본에 대한 주인공의 대사에 끌렸고, 렘브란트나 레핀 티치아노의 빛과 구도가 영화 에 녹아 있어 좋다고 느꼈다.나이가 들어가며 <니체>나 <일본>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었 듯 영화 <희생>에 대한 내 생각도 바뀌어갔다.재미있는 것은 타르코프스키의 언어가 상당히 직설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니체나 일본에 의해 대변된 동양사상은 세계대전 이후의 서구 사상가들에게 대안적 사상 혹은 도피처로서의 사상이 되었다. 앞서서 나는 동양 사상이 단지 니체가 활동하던 1800년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1700년대부터 꾸준히 연구되어져 서구사상의 대안 사상이 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계몽과 근대의 서구 사상은 동양 사상의 흡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그런 관점에서 타르코프스키의 언어는 직접적이다.철학과 미학에 정통했다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니체를 니체의 영원회귀를 니체의 어린아이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니체가 동양과 일본에서 영향을 받았듯 주인공도 일본과 불교의 윤회를 직접적인 대사로 언급한다.시나리오의 주요 골격은 과도한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을 경계하는 인물들의 대화와 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에 의한 혼돈으로 구성된다. 종말의 문턱에 다다름을 깨달은 주인공은 우체부의 권유에 따라 구원의 매개체인 하녀 <마리아>를 찾아간다. 은유된 <마리아>는 타르코프스키의 종교적 신념과 관계있다. 러시아 정교회와 개신교, 카톨릭 간에 그가 가질 종교적 혼돈이 개신교 교회의 뒤켠에 살고 있는 <마리아>를 통해 나타난다. <마리아>는 여러 상징적 행동으로 구원을 이끄는 인물로 표현되나 모호하고 애매하게 묘사되어졌다.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해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화면의 속도감과 다르게 서구사회가 안고 있는 사상적 혼돈을 긴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의 인테리들은 사회주의 혁명이 전세계 반의 사회체계를 바꾼 상황에서 자본주의 물질 문명의 신세계를 일군 서구사회의 위태로움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사상의 혼돈 속에 누군가는 인간성에의 희망을 누군가는 실존적 허무를 사유의 체계로 그려왔다. 그 가치의 혼돈을 타르코프스키는 정제되고 치밀한 디테일을 가진 화면으로 잘 그려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사실 타르코프스키의 니체나 타르코프스키의 일본 을 되짚어보려 영화를 본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가치가 있고 타르코프스키는 그가 가진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다 생각한다.내가 영화를 본 것은 종교를 가지며 내가 가지게 된 <희생>에 대한 관념이 그에게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궁금해서였다.내가 철학을 공부할 때 선생님은 철학이 아닌 종교의 영역을 또 다른 차원의 영역으로 크게 그리셨고 그래서 철학은 종교이해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다.종교를 가지지 않았을 때 나는 그 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종교학은 왜 철학과 사회과학과는 차원이 다른 학문일까? 왜 종교는 논리로 설명되어질 수 없나? 신앙을 가지기 전 나는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공부를 하는 와중에 신앙을 긍정한 여러 철학자들을 알게 되며 자연스레 종교를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신앙을 가진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나는 철학과 종교가 왜 다른지 막연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나는 신앙을 가지기 전 종교란 개인적인 것이고 기도를 통해 내 안에 있는 절대자를 만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기가 나에게 세례를 같이 받아보자고 제안한 10여년전 그에게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우리가 신앙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교회라는 사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 밖의 사회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교회도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와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갔을 때 우리는 교회의 사람으로 인해 실망하면 안된다. 교회 내의 일반 신자든 교회 내 지도자든 그가 완벽한 신앙인이고 완벽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실망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하느님을 바라보고 가야하고 그래야 옳은 신앙생활을 할 수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대전에 오신 2014년 8월15일 처음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그 생각은 나의 가장 큰 신앙의 위기에서 나의 신앙을 유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그 위기란 다음 글에 써 갈 나의<대부>에 의한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작은 지면으로는 말로 다 할 수 없어 언젠가 20여페이지가 되는 비망록 형식으로 글을 써 두었다.말년의 타르코프스키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중요시 여겼다. <봉인된 시간>에서도 마지막 부분의 많은 부분이 <희생>에 대한 내용이다.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란 철학자로서 예술가로서 지식인으로서의 결단이었다.마치 <희생>의 주인공이 자기가 아끼던 바닷가 집에 불을 지르듯… 자본과 욕망의 집결체인 집을 하느님과의 약속에 의해 불살라버리는 <희생>. 그리고 수도승이 죽은 나무에 물을 주듯 목적없이 생명에의 지향을 가져가는 희생.종교적 신념이 지식인의 신념과는 사뭇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본 <희생>은 타르코프스키를 다시 긍정하게 만든다. 그의 고민의 의미와 크기가 남달랐음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20220607_송성영 선생님의 부고를 듣고
그 무렵 나는 <노자>에 빠져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동경했고 그래서 서울보다는 시골마을에서의 삶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여년전 그렇게 계룡산 아랫마을로 이사를 와 집에서 차로 5분가량 떨어진 곳에 사시는 그 분을 처음 알게 됐다.당시 선생님의 부인이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지인의 소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선생님 집에서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자연스레 선생님 사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아이들이나 집사람 따라 그 집에 가 가끔 그 분을 뵐 수 있었다.선생님은 내가 시골로 내려오기 수년 전에 서울서 하던 기자 생활을 접고 계룡산 내원암 근처에서 구도자의 길을 걷고자 토굴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림을 그리던 지금의 부인을 만나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시골 빈집을 구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후 아이를 둘 낳게 되었는데, 그 분의 삶은 그가 쓴 책이나,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사람이 살다보면, 자기 삶과 얽혀 많은 영감을 주는 몇몇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영감을 주는 그들의 삶은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단정지어지지는 않지만, 유리컵 물 속에 용해되는 커피방울처럼 상념에 빠질 때마다 되살아나고 뒤엉켜 삶의 단초들을 제공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분은 나에게 그런 단초를 제공했던 몇 몇 큰 사람중의 한 분이었다.당시 나의 <노자>는 이론이었고, 삶과 잘 연계되어지지 않았다. 막연한 동경은 나의 영글지 않은 젊은 삶을 파고드는 불편한 가시와 같았다. 왜 좋아보이는 이 이론은 삶과 하나가 될 수 없나? 그것이 내가 가야만 할 길처럼 보이는데 왜 나는 그 이론들을 제대로 실천해 내지 못하나? 젊은 나는 고민했고, 책에서도 도, 도 하며 다니는 계룡산의 은둔자들에게서도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없어 힘겨워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때 나는 그 분을 보았다.운명을 거역하지 않으며, 또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그의 삶을 보았다. 나처럼 곧 폐기물이 될 소모적인 집을 짓고 사는 대신 그 분은 시골의 버려진 빈 집을 구해, 불편하지만 꿈이 있는 가족의 둥지로 만들고 있었다.내가 아이들에게 삶의 전장에 나가 친구들보다 하나라도 더 배워 오라고 가르칠 때에 그 분은 자기 스스로를 거스르지 말고, 친구들을 사랑하라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내가 봄이 되면 마당에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잡초를 죽이기 위해 근삼이 제초제를 뿌리고 있을 때에 그 분은 콩밭 가운데 자라는 잡초도 생명이라고, 눈에 뜨일만큼 자란 잡초만 손수 힘겹게 뽑고 있었다.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혁명이 되어야 하는 지 나는 시골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운 삶속에서 그분은 하느님이 준 온갖 생명체를 사랑할 줄 알았고, 그리고 그 생명체를 사랑하는 방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그래서 그분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노자>적이었다.그런데 그분을 알게 되고 6-7년이 지났을 즈음 나는 그 분이 나에게 또다른 현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생각했다.계룡산을 관통하는 호남선 KTX가 그 분 사는 집 뒤를 지나간다는 것이 알려지자 선생님은 계룡산을 망치고, 계룡산의 사람과 생명체를 망친다고 반대 시위를 했더랬다, 그러다 결국 KTX 굴이 뚫리게 되었고, 선생님은 계룡산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전라남도 고흥 바닷가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이사를 가 손수 배운 목구조 기술로 주위 재활용품들을 모아 바닷가에 살뜰한 집을 지으셨는데 어찌나 잘 지으셨던지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했을 적에 건축가인 내가 많이 숙연해졌다.그렇게 이사를 가고 가끔씩 선생님 소식을 듣던 중 지인을 통해 선생님이 부인과 결별하고, 고흥에서 충남 서산 어딘가로 거처를 옮겨 혼자 사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나 자신이 그렇게 못 살아갔기에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선생님의 삶은 이 소식을 통해 나의 마음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결국 삶은 현실인가?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니,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이니, 다 허울좋은 껍데기이고, 삶은 그 껍데기를 허용하지 않는가?혁명과 실험은 실패했고, 혁명과 실험 따위로 사람은 행복해 질 수 없구나.혼자 사는 선생님의 소식에 나는 낙담했다.그리고 그분의 삶과 나의 삶과의 보이지 않는 씨름은 내가 <노자>를 놓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나는 <노자>를 운동의 동기에서 비판하기 시작했다.세상에의 참여가 수동태가 되어서는 안되고, 능동태가 되어야 한다고, <노자>의 수동적 인식론 수동적 현실 참여가 결국 <노자>를 따르는 사람을 패배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다.또 문명을 긍정해야 한다고, 새로운 것들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들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그렇게 또 수년이 흘렀다.그사이 나는 아이들을 도시로 데리고 와 평범한 도시인의 삶을 살았다. 반면 선생님은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고 히말라야를 오르셨던 듯 하다. 또 몇년전부터는 암으로 투병하셨던 듯 하다.그리고 이틀전 나는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어릴적 우리 아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림을 배우던 선생님의 두 아들로부터의 부고였다.그 부고를 읽으며 나는 또 생각하게 되었다.내가 틀렸다.그리고 그가 옳았다.
<부고>아버지께서 어제 밤 10시경, 소천하셨습니다.-남대전장례식장 * 유가족 * 아 들 : ****형 제 : ****배상-아버지가 저희 두 행자에게 남기신 유언 몇자 적어올려봅니다....너희들이 진정으로 기쁘게 할수 있는 일을 해라. 안 좋은 습은 버리고 좋은 습을 기르다 보면 꽃피면 열매가 맺히듯 진정한 행복이 저절로 찾아온다. 반드시 명심해라 그 행복한 습이 너희들 몸과 마음에 베어드는 순간 반드시 내가 너희 곁에 있게 될 것임을...주변 분들에게는 항상 늘 고마운 마음이었다고 전해라 그 분들이 있어 행복했다고....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자비를 배풀어라 그게 마음이든 물질이든 가능한 모든 것을 베풀어라.. 베풀고 사랑하는 만큼 모든 것이 너희들에게 돌아 갈 것이다...내 화장한 뼈가루는 집안 사람들 의견을 존중해 일부는 유골함에 담아... 납골당은 쓸데없이 돈들어가니까 할아버지 산소 옆에 묻어두고...조금 남겼다가 고흥 바다에 뿌려 물고기 밥으로 주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는 삭막한 히말라야 북인도 문시아리 언덕 주변에 갈 기회가 있으면 거기서 바람에 날려라...그래야 너희들이 히말라야를 종종 찾아갈게 아니냐... 히말라야 4천고지 이상 되는 곳 아무도 없는 정적만 흐르는 막막한 곳에 홀로 걷다보면 너희들이 갈길 인류가 가야 할길이 무엇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진정 행복으로 가는 길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중략모든 것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가짐으로 살아라...너희들에게 밤새 얘기해도 끝이 없지만... 그동안 잔소리와 메모나 글을 통해 접하기 바란다... 메모장 곳곳에 아빠가 나름 터득한 삶의 지혜와 아빠의 유언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아빠의 죽음을 슬퍼하지마라 죽음은 또다른 생을 위한 발걸음인것이니... 아빠는 웃으며 가련다..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란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지만 그러다보면 분명 어디선가 무엇이로든 나를 만날수 있다..우리의 마음자리가 참마음에 가깝다면 어느 생애에 너희들의 스승이거나 너희들 제자이거나..혹은 도반이거나...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부지런히 마음자리를 닦아 정진해서 만나자구나..
210118 _ 눈오는 날올 해들어 눈이 꽤 많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눈이 오니, 몇 주전 추위와 눈으로 세종시가 얼어붙었을 때, 공원에서 눈썰매 타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세종시 고운동 일원의 주택가는 지대가 높고 경사가 많아 곳곳에 램프며 계단식 조경들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 곳이 눈이 쌓이고 미끄럽게 되니 아이들이 눈썰매를 끌고 나와 미끄럼장을 만들고 아이 엄마 아빠도 나와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냅니다.산책길 곳곳서도 미끄럼 타는 아이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제천 수변공원에도 주택가 언덕에서도 눈이 쌓이고 경사가 형성된 곳이 아이들의 눈놀이터가 되었습니다.어린이집이며, 학원 학교 등 아이들의 스케쥴은 빡빡한데, 정작 아이들은 쉽게 놀 곳을 찾지 못합니다. 계획되어진 놀이터, 공원 이런 곳들은 왠지 의도된 대로 행동해야할 것 같고, 주어진 규칙을 따라야 할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집니다.대신 계획되지 않은 골목, 의도치 않게 자연이 선사한 환경에 아이들은 더 신나하고 즐거워 하는 듯이 보입니다.60년대 situationalist들은 도시와 건축을 놀이의 공간으로 변모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 의도와 결과가 어찌되었든 현대도시가 너무 주어진 틀로 사용자의 활동을 구속하고, 도시의 자연성과 도시의 여백이 담을 모험을 외면할 땐 공감가는 구석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눈 오는 오늘 하루 다들 눈길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_ 건축가분들 밴드를 운영하는데,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 올린 글을 공유드립니다. ^^
엊그제 지인이 책소개 칼럼에 글을 써달라 해서, 글을 써 보았다. 요즘 엔지니어링 관련된 책만 읽다, 다시 인문학 책을 들춰보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듯...
책 제목 : 생성의 철학 왕선산
작 가 : 이규성
다소 어려운 책일 수 있지만 이규성 선생님의 <생성의 철학 왕선산>을 소개합니다.왕선산(1619~1692)은 명말청초의 대 유학자로 주기론적 입장에서 송대의 신유가를 계승하고, 그것을 자신의 사회, 정치적 경험을 토대로 수리 보완하여 사상적 틀을 세운 인물입니다.저는 건축가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무엇이 만들어 지고 새로 생겨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창조라고 할 경우, 전적인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에 동양인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생성하고 소멸하는 존재적 연속성과 힘의 동적 흐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였습니다.이 책은 창조의 의미가 아닌 생성이라는 의미로 삶과 존재를 표현한 동양의 철학을 세심하고 친절하게 해설해 줍니다. 현대는 개개 구성원의 창조성을 과도하게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창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늘의 사회 환경적 위기를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이규성 선생의 이 책을 통해 생성의 철학을 통한 동양의 지혜를 맛보시기를 권합니다. [감동적인 글귀]<왕선산은 “천지가 사물을 생산하는 것과 성인이 일을 일으키는 것은 하나일 뿐” 이라고 주장했다. 우주도 영원한 통일적 생명체로서의 ‘존재’이듯이 사회도 성인의 통치 행위에 의해 장구한 생명성을 획득한다. 신유가적 형이상학과 정치학은 전체적 생을 그 붕괴 가능성으로부터 구제하는 회복 운동이다. 사물의 노쇠는 생명의 회춘에 의해 존재에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은 원래 생을 말하고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故聖人原只言生不言死)”>[지은이] 이규성 선생님은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를 마치고, 영남대, 이화여대에서 교수로 계시다 현재는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생성의 철학 왕선산> 뿐만이 아니라 한국과 동양의 철학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여러 책들을 저술하셨습니다.p.s :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는데, 이 책은 10여년 전 은사님 추천으로 읽게된 책이다. 책에 묻혀 있던 그때가 참 즐거웠던 때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문자로나마 은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지방에서 건축하기>
15년 전 나는 서울 대학로에 있던 설계사무실을 퇴직하고 고향 근처의 시골로 이사를 했다. 분당으로 감리를 나갈 예정이어서 경기도 수지로 아이들과 함께 이사를 했는데, 감리 나갈 날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거의 1년 가까이 수지에서 대학로까지 출퇴근하게 됐다. 수지로부터 대학로까지 출퇴근하는 데에는 편도 2시간이 걸렸고, 긴 출퇴근시간도 그렇지만 야근이며 철야며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상황... 초등학교 다닐때까지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우겠다고 한 와이프와의 약속도 있었고 또다른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시골행을 선택했다.당시는 sns가 막 확산돼가던 시기로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고, 다운시프트라는 주제가 유행하여 도시를 떠나 시골의 삶을 영위하며 생업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그때 난 인터넷만으로 시골에서 건축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영업을 하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 사무실 임대료 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처음 시골집에서 사무실을 오픈했을 때는 몇몇 지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일이 있어, 근근이 사무실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또 시골에 사는 동네분들과도 사귀어 시골 농가주택을 설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가주택 설계 몇 건 가지고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다행히 도시를 디자인하는 국제공모에서 상을 받아 도시와 관련된 일들이 생겼고 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와 생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었다. 물론 그것으로도 적절히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어서 십 몇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무실을 닫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할 정도의 고비가 두세번은 있었던 것 같다. 귀향 3년 후 나는 대전으로 사무실을 옮겨 시골에서의 재택근무를 마쳤다.창밖에 올해의 첫눈이 내리고 있다.10여년전 시골서 재택근무할 때의 겨울이 떠오른다.시골에 내려간 다음해 3월 폭설이 내려 근 10여일을 집안에 묶여 있은 적이 있다. 당시 며칠은 불가피하게 그리고 그 다음 며칠은 자발적으로 집을 떠나지 않았었다.하늘에서 내려오는 쟈켓 단추보다도 큰 눈송이들...허공을 덮은 눈에 의해 찾아온 쓸쓸해 보이는 어둠...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앞산을 오를 때 내가 새긴 깊은 눈발자욱..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고립감...마치 쟈코메티의 조각과 맞닥뜨린 것과 같은 내 내면의 수축...그 즈음 나에게 지역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섣부른 희망 그리고 찾아온 고립, 두려움. 그리고 나의 건축이란 그 두려움과 자연스레 이별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20180110
.나는 세종에 살며 가끔 통일 수도 세종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수도의 문제가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가 되어 있고, 부동산의 시각에서 지역의 이권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 도시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다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물론, 북쪽 어딘가에 이런 도시를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 또 별개의 문제가 되겠지만...한 도시란, 그 도시가 만들어진 시대의 사상이 담겨져 있는 인문학적 실체이고, 문화의 거시적 표현물이다.우리는 니체의 후계자들이 사상계를 주무르는 사상적 혼돈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푸코,데리다, 들뢰즈 등 포스트 모던적 사고를 대변해 온 사상가들은 예술분야를 넘어 정치, 사회 분야 깊숙이 스며들었고, 이제 그 사상적 편린들이 인터넷과 TV 영화의 이미지, 사고의 조각들이 되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우리는 계속해서 다양성과 진보의 명목아래 니체적 변화의 패달을 밟는다. 자본주의는 이를 비호하고, 근본적 사회 질서의 해결책이 마련되어지지 않은 채, 경제적 이슈, 부의 양산 문제에만 매달리게 한다. 한편, 7-80년대 풍미했던, 신과학운동이나, 동양적 사유의 복고는 생활의 저변으로 사상의 저변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일시적 관심대상에 그치고 만듯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서양의 앞선 사상가들이 많은 부분 동양의 사유를 자기화시켰고, 또, 동양적 사유 내에 주체의 문제, 즉 사회변화의 동력이 되기 위한 사상적 실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사회는 계속적인 경쟁구도에 노출되어질 뿐, 변화의 속도를 조율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상으로 재정비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기술의 발달이 결국 핵을 만들었고, 우리 스스로를 자멸시킬 힘을 우리가 가졌음에도 그를 통제하기 힘든 구조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남북대화를 하며 풀어나가야 할 핵의 문제가 이스라엘이나 중동 유럽의 문제가 아닌 한국이 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마치 인류가 풀어가야 할 큰 숙제를 한국이 떠안게 된 듯한 느낌.세종시를 기획하여 위치를 결정하고, 도시계획을 진행할 무렵인 2005년에도 역시 많은 고민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도시의 질서문제, 도시가 만들어지는 시간과 과정의 문제, 정치적 문제, 동양적 혹은 전통적 사유의 문제 등.당시 페레아의 중심을 비운 원형도시안이 공모전에 당선되고 기초안이 되었을 때, 우려섞인 목소리도 많았지만, 나 스스로는 아! 하고 가벼운 탄성이 나왔었다. 렘 콜하스의 아이디어를 변형하고 안하고를 떠나,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우리에게 필요한 형상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중심을 비운다는 개념이 노자와 같은 동양의 사상을 드러내는 것도 그랬지만, 그 중심에 대해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도시의 중심을 시민이 소유하게 되는 도시>라고 한 페레아팀의 설명 때문에 더 그랬다.당시 심사위원장은 현대의 가장 유능한 네오 막시스트인 <데이비드 하비>였다. 보수정권 10년동안 부각되어지지 않은 부분이긴 하나, 그가 미국 뉴욕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니체와 같은 포스트 모던적 사고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질을 멈추지 않은 인물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를 정치적 인물로 보는 것은 무리이고, 문화비평가 문명비평가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하다. 하비는 문명변화의 속도 문제, 금융 자본의 문제, 부동산개발로 나타나는 도시의 권한 문제 등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순들을 넘어야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통일수도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난제들을 잘 해결해나갈 수 있는 사상적 수도이기도 하여야 한다. 남북이 공통으로 시민을 이야기하고 인민을 이야기하고, 역사의 흐름을 이야기했다면, 나는 세종시가 그에 걸맞는 도시가 아닐까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시민이 주인인 도시, 민주적 가치가 살아있는 도시, 자본주의의 모순에 비판적이고, 새로운 사상이 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도시. 서울의 한계는 유교의 전통아래 탄생한 도시이고, 그 중심을 비워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채워나가고 확산시킬 수 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닐까?